과도한 신용대출 관리 통해 부동산 규제책 마련 의도
집값 안정 의도 불구 신용대출 또 옥죄 주택구입 포기 강요
연봉 8000만원이 고소득자?… 잣대 모호하고, 현실에도 맞지 않아
공급책 제대로 못 내놓고 수요 억제 통해 주택시장 왜곡
시장원리 무시하고 사유권 침해하는 사다리 걷어차기 그만해야
사진 | 연합뉴스

편집인 | 정부가 과도한 신용대출을 관리하겠다며 지난 13일 내놓은 사실상의 부동산 대출 규제책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신용대출 관리대책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집 담보대출 외에 신용대출까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Debt Service Ratio)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달 30일부터는 연 소득 8000만원 이상인 사람이 1억원 넘게 신용 대출을 받으면 DSR 40%로 한정한다. 즉, 자신이 집 담보 대출 등을 통해 빌린 총 부채에 대해 1년 간 갚아야할 원금과 이자의 합이 연 소득의 40%를 넘지 못하도록 못박은 것이다.

결국 그간 소득에 근거해 신용만 좋으면 돈을 빌린 직장인들은 앞으로 주택 구입 등에 쓸 수 있는 돈이 크게 줄어들거나, 아예 제도권에서는 신규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상황까지 이어질 수 있다.

둘째는 금융권에서 앞으로 새로 빌린 신용대출 총액이 1억원이 넘는 사람이 자금 차입 후 1년 내에 서울 및 경기 등 규제지역에서 집을 사면 해당 신용대출을 즉시 회수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당장 목돈은 없지만, 소득이 안정적이어서 이에 근거해 돈을 빌려 주택 구입 자금에 보태려는 사람은 앞으로는 그런 ‘꿈’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호주머니에 큰 목돈이 있지 않는 한 마래 소득 흐름을 앞당겨서 집을 사려는 행위가 원천 금지되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국가 전체적으로 과도하게 풀리는 신용대출을 규제해 혹시라도 있을 미래의 국가적 신용 위험에 대비하자는 차원이다. 더불어 문재인 정부가 목표로 하는 ‘집값 안정’을 도모하려는 의도이다.

그런 의도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대출하려는 사람이 자신의 신용위험과 소득에 근거하고, 금융권도 차입자의 신용 리스크를 면밀히 분석해 빌려주는 대출마저 막는 것에 대해 비판은 거세다.

가뜩이나 이번 정부 들어 주택 문제에 대해 공급 확대 정책보다는 수요 억제책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다시 내놓은 이번 수요 억제책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에게 허탈감을 넘어 분노까지 안겨주고 있다.

사진ㅣ게티이미지뱅크

천편일률적이지는 않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와 뉴스 댓글에는 이번 대출 규제 방안에 대해 비난 일색이다. “열심히 일해서 집 사려는 사람에게 찬물을 끼얹었네요”, “신용등급이 높다는 건 직장이 안정됐다는 것인데, 왜 집을 못 사게 막는가”, “본인이 갚을 능력이 돼서 대출 받아 산다는데 무슨 짓인가”, “이제 내 집 마련은 외국에서 해야겠다” 등 신용대출마저 가로막하는 이번 규제책에 대해 불만과 비아냥이 쏟아지고 있다.

아무리 월급을 모아도 자고 일어나면 올라가는 집값을 바라보며 “정부 말 믿고 전세살며 기다렸는데, 이제는 정말로 사다리가 끊어져 버렸다”는 무주택 직장인의 한 숨이 크게 들린다.

연봉 8000만원을 ‘고소득자’로 간주해 두 갈래로 나눠 대출을 규제하는 점에 대해서도 비난이 적지 않다. 20년 전도 아니고,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선 상황에서 대기업 간부급의 경우 충분히 가능한 소득인데, 8000만원을 정해서 고소득자로 낙인 찍어 대출을 규제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8000만원에서 세금 제외하고 실수령액은 얼마인지, 외벌이로 4인 가족이 사는 집에 고정비 빼고 나면 실제 얼마나 손에 쥘 수 있는지 아느냐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그럼 7999만원은 DSR 적용을 받지 않고, 8000만원이면 적용되는데 도대체 이게 합리적인가”라며 잣대의 부적절함을 비판하기도 한다. 어렵사리 월급을 저축해 목돈을 만들며 집 담보 대출을 받고, 여기에 신용대출을 얹어 집 한 번 마련해보려는데 무슨 날벼락이냐는 게 비판과 비난의 핵심이다.

이처럼 ‘입구’를 조이는 대출 규제는 처음이 아니다. 정부는 그간 각종 부동산 대책을 통해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가는 돈을 규제해왔다. 규제책이 한 두 개가 아니지만, 대표적인 게 주택담보인정비율(LTV·Loan To Value ratio) 축소다.

주택을 담보로 대출 받을 때 주택가격의 몇 %를 빌려주는지를 정하는 LTV는 현재 15억원 이상의 고가 아파트에 대해서는 아예 대출 창구가 막혀 있고, 9억원이 넘을 경우 40%(투기과열지구 내)로, 9억원 밑으로 20%로 LTV 한도가 낮아진 상태다.

주택 구입자 입장에서는 정부의 수많은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 집값은 계속 올라가고, 주택 공급은 바로 늘어날 리 만무한데 또 한 번 자금 조달 창구를 막는 이번 규제책은 ‘내 집 마련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아무리 그 의도가 좋다고 강변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설사 내 집이 이미 있는 사람이라도 소득을 담보로 한 신용대출을 통해 조금 더 넓은 집으로 가려는 꿈도 접어야 하는 상황이다. 돈도 돌아야 하지만, 집도 윗집이 팔려야 아랫집도 팔리면서 매매시장이 작동하고 경제가 돌아가고 수급이 해결되는 것이다.

살고 싶은 주택의 공급이 부족한 가운데 수요만 억제하니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는 사람들은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그래서 오죽하면 섣부른 규제책으로 제발 시장을 왜곡시키지 말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국민을 정말로 걱정한다면서 국민들을 아프게 하는 사다리 걷어차기가 그만 반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