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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September 23, 2020

하다하다 이런 법도 나왔다…"시장 20km내 대형마트 금지" - 중앙일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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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등의 경계로부터 20㎞ 이내의 범위를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 지정하자."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경남 김해을)이 대표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산법) 개정안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영세 소상인을 보호하려면 현행 전통시장 반경 1㎞ 제한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이 발의가 현실화하면 앞으로 전국엔 대형마트나 쇼핑몰이 들어설 수 있는 곳은 없다.  

[거꾸로 가는 유통규제]

 

전국에서 점포 신설 원천 봉쇄  

가령 전통시장인 서울 논현동 영동시장 반경 20㎞ 안에는 남쪽으로는 판교, 의왕시가 들어온다. 북쪽으로는 의정부까지 대규모 점포(매장 면적 합계가 3000㎡ 이상)를 만들 수 없다. 영동시장에서 북서쪽으로 김포국제공항까지의 거리가 약 20㎞ 정도다. 시장 한 곳으로 서울 전역의 쇼핑몰, 대형마트 설립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게 된다. 왜 반경 20㎞인지에 대한 근거는 발의안에 없다. 지방도 마찬가지다. 김 의원의 지역구인 경남 김해의 동상시장으로 반경 20㎞를 설정하면 창원과 양산, 부산 일대까지 대규모 점포를 만들지 못한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영동시장. 반경 1km와 20km 비교. 보존 구역을 400배 확대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영동시장. 반경 1km와 20km 비교. 보존 구역을 400배 확대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김정호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은 대형 유통기업이 대규모 점포 포화 상태인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벗어나 슬금슬금 지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하남 스타필드가 생기면서 인근 상권을 모두 흡수해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가중됐다”며 “김해에서도 주촌면에 창고형 할인매장 코스트코가 생길 계획이 있어 중소 상인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해 동상시장. 반경 1km와 20km 비교. 전통상업보존 구역을 현재의 400배 확대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김해 동상시장. 반경 1km와 20km 비교. 전통상업보존 구역을 현재의 400배 확대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미 강한 규제, 초강력 규제로 재탄생

기업규제 법안 풍년이다. 재계는 국회에서 논의되는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 등 이른바 ‘기업규제 3법(공정경제 3법)’이 기업 활동을 옥죈다며 총력 저지하겠다고 나섰지만, 규제3법은 서막에 불과하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 관계법(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개정안도 대기 중이다. 
 
유산법 개정안은 이중 이른바 '더 센 놈'이다. 유통기업들이 초긴장 상태인 이유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까지 나서 유산법 개정안에 대해 “1호 민생공약으로 통과시키겠다”고 최근 공언했기 때문이다. 기존 유산법 규제 존속기간은 오는 11월 23일까지다. 규제 효력이 사라지기 전 새로운 룰을 정해야 하는 만큼, 21대 국회에선 유산법 개정안이 무더기로 제출됐다. 23일 현재까지 12개 안이 제출, 심사 중이다. 제출 법안 중엔 아예 사업을 하지 말라는 수준의 요구도 꽤 된다. 보존구역을 전통시장 반경 20㎞로 확대하자는 김정호 의원 안이 대표적이다. 
    
현재도 서울 등 각 도시에서 대규모점포 설립은 까다롭다. 롯데쇼핑의 서울 상암동 쇼핑몰은 부지 2만644㎡(약 6245평)를 마련해 놓고도 토지 용도 변경 승인을 받지 못한 채 7년째 표류 중이다. 인근 전통시장 17곳 중 1곳과 상생 합의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 해결될지 기약이 없다. 
 
2016년 용지를 매입한 스타필드 창원(부지 3만4000㎡)은 지역 상인의 극심한 반대에 3년간 표류하다가 지난해 시민 200명이 참여한 공론화위원회에서 6개월 논의 끝에 나온 찬성 안이 받아들여지면서 추진을 이어가게 됐다. 
 
조춘한 경기과학대 스마트경영과 교수는 "법안 취지와는 달리 이미 쇼핑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서울 수도권은 살리고 미흡한 지방은 죽이는 규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나주혁신도시 실패 원인을 보면 쇼핑 인프라 등이 없기 때문"이라며 "광주나 청주 등 지방 소비자가 주말에 수도권 아웃렛, 복합쇼핑몰로 몰리면서 지역 상권이 죽는 현상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유통 대기업 관계자는 “유통산업은 신규 점포를 내고 성장하는 업태인데, 결국 아무것도 하지 말고 성장도 멈추라는 것”이라며 “온라인 유통으로 인한 시장 격변과 코로나 19까지 있는 상황에서 기업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 일자리 증발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족쇄를 채우면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대형쇼핑몰은 일자리 유발 효과가 높은 업종이다. 2016년 개장한 스타필드 하남은 지역주민 5000명, 2017년 개장한 스타필드 고양은 3000명을 고용했다. 수도권 대형마트 핵심 점포 한 곳의 직고용 평균 인원은 200명 수준이다. 지역 개발을 위해 쇼핑몰 유치가 자주 쓰이는 이유다. 스타필드 창원의 시민 공청회에서 찬성이 70%를 넘어선 것도 지역 개발 효과를 기대한 여론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스타필드 창원 건설에 따른 생산 유발 효과는 1조원, 고용 효과는 연간 1만7000명으로 추산한다"고 말했다.
 
의무휴업을 확대해도 고용은 감소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전국 복합쇼핑몰이 월 2회 휴업하면 6161여개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백화점, 쇼핑센터로만 의무휴업을 확대해도 5만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봤다. 일부 개정안에 들어 있는 면세점, 프랜차이즈형 체인까지 더하면 사라지는 일자리는 급증할 전망이다.  
 

규제 기대 효과와 다른 ‘부작용’  

2013년 시작된 대형마트 월 2회 의무휴업이 소상공인 보호라는 기대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논쟁적이다. 의무휴업의 예상치 못한 영향 중 하나가 준대규모 점포 크기의 점포를 운영하면서 규제에서 벗어난 '식자재마트'의 부상이다. 식자재 마트는 전통시장 인근에 점포를 내고 마트 의무휴업일 수요를 빨아들이고 있다.    
21대 국회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주요 내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21대 국회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주요 내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대규모 점포 개설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자는 제안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영업의 자유는 차치하고, 소비자 선택권의 과도한 제한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도 “신규사업자의 진입을 제약해 경쟁 제한적인 규제가 돼 가격 인상 및 소비자 후생의 감소를 가져올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여기에 소매업 시장 접근을 자유롭게 한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정 위반 소지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면세점이 거기서 왜 나와  

유통 산업의 균형적 발전, 소상공인 보호라는 표면적 취지와 동떨어진 법안도 많다. 이동주 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이 발의한 법안은 면세점(보세판매점)도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월 1회 일요일 의무휴업을 적용하자고 한다. 추석과 설날은 반드시 의무휴업일로 지정해 유통산업 종사자의 장시간 노동을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면세점 관계자는 “면세점은 글로벌 경쟁이라 휴일 면세점이 영업을 안 하면 2박3일 주말여행권인 한·중·일 면세점 경쟁에서 불리해진다”며 “월 1회 일요일과 명절까지 연간 14일 휴무로 직접 매출 피해만 계산해도 9500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특허사업으로 경쟁입찰을 통해 사업권을 확보한 면세점 사업자에 유산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이중 규제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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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 의원 안은 면세점 외에도 어지간한 오프라인 사업자는 모두 의무 휴업과 영업제한 대상으로 묶었다. 복합쇼핑몰과 백화점은 물론, 아웃렛과 대기업으로 상품을 공급받는 상품공급점, 대규모점포나 준대규모점포에 준하는 기업이 직영하는 직영점형 체인사업, 프랜차이즈형 체인사업이 월 2회 공휴일 문을 닫아야 한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서울 중구성동구갑)은 복합쇼핑몰의 월 2회 쉬는 날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정하자고 제안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복합쇼핑몰이 월 2회 공휴일 의무휴업을 하면 매출액은 4851억원이 감소한다. 의무휴업 대상을 백화점, 쇼핑센터, 전문점까지 넓히면 2조5221억원이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통 패러다임 변화 반영 못 해  

우후죽순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이 유통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온라인 시장 규모는 2014년 45조3000억원에서 지난해 79조6000억원(통계청)으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온라인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반면 오프라인 시장 전체 규모는 2012년 291조원에서 지난해 293조원으로 성장 정체기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복합쇼핑몰은 유통매장이라기보다는 놀이ㆍ관광시설인데 이를 휴일에 의무적으로 쉬게 하는 규제는 오프라인 유통의 경쟁력을 약화해 관련 일자리를 없애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코로나19를 계기로 완전히 e커머스(전자상거래)가 운전대에 앉은 소매 산업의 변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법안”이라고 말했다.  
 
한국유통학회가 지난 7월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소비자는 인근 수퍼마켓(23.66%)에서 장을 보는 경우가 가장 많고, 전통시장(5.81%)을 이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무휴업 규제가 적용되는 일요일 대형마트 이용자의 카드 금액 감소율이 평일에 비해 컸다. 반면 온라인 쇼핑은 지속해서 일요일 이용 금액 증가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의무 휴업의 혜택은 온라인으로 돌아간다고 분석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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