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오늘 중복입니다~. 닭 준비하세요. 삼계탕에 넣어드시라고 살아 있는 전복에 낙지까지 한 팩에 1만원!”
26일 오전 서울 동작구의 한 슈퍼마켓에서는 중복맞이 세일이 한창이었다. 손님들은 삼계탕용으로 포장된 영계와 전복, 낙지 등을 바구니에 분주히 담았다. 같은 시각, 종로구의 유명 삼계탕집에는 ‘몸보신’을 하려는 이들로 긴 줄이 생겼다. 익숙한 복날 풍경이다.
‘고기 없는 복날’은 가능할까. 나아가 채식으로 보신할 수 있을까.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4명이 생애 첫 ‘채식으로 보신하기’에 도전해봤다. 동물성 식품을 모두 제외한 비건식과 달걀·생선은 포함하는 페스코식 등 동물의 희생을 최소화한 음식들로 식탁을 꾸렸다.
조문희 기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미트 러버’다. “늘 고기를 먹기 때문에 복날이라고 특별히 보신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그는 이날 서대문구의 한 비건 식당에서 두부스테이크를 먹었다. 복날이면 삼계탕이나 연포탕을 찾았다는 심윤지 기자는 해물김치전을 부쳤고, 주로 탄수화물을 먹고사는 최민지 기자는 집에서 직접 파프리카와 양파를 버무려 두부스테이크를 구웠다.
한국 사회에서 보신이란 곧 ‘고기를 먹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고기 욕심이 별로 없다는 김희진 기자조차 “평소 식사할 때 돈가스나 햄 같은 고기 반찬 하나는 있어야 서운하지 않다”고 말할 정도다. 그래서 이날의 채식은 이런 견고한 상식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이날 바질페스토 샐러드와 푸실리파스타, 호박죽, 연어 샌드위치 등으로 하루를 보낸 김 기자는 ‘보신’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처음에는 ‘보신’과 ‘채식’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하지만 샐러드를 먹으면서 생각보다 포만감이 들고 속도 편안했습니다. 나름대로 단백질과 탄수화물 등 균형 잡힌 식사가 돼서 보신이 별거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채식하는 날로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최 기자의 경우 일종의 ‘디톡스’ 효과를 느꼈다. 휴일인 이틀 내내 고기와 밀가루 위주의 식사를 한 터라 속이 더부룩했는데, 세 끼 채식으로 몸이 깨끗해진 기분이 들었다. 생명에게 조금이라도 덜 폭력적인 식사를 했다는 뿌듯함도 컸다.
고기 없으면 밥을 잘 안 먹는다던 조 기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보였다. 그는 “고기의 쫄깃한 식감만 보장된다면 채식을 해볼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 하루짜리 채식 도전에도 곳곳에 암초가 있었다. 우선 선택지가 극히 적었다. 식당 고르기부터 쉽지 않았다. 김 기자는 “집 근처 유일한 비건 식당에서는 잡곡 리소토 등 꽤 풍족한 식사를 할 수 있지만 하필 쉬는 날이라 갈 수 있는 곳은 샐러드집뿐이었다”며 “홍대 앞이나 성수동 같은 번화가가 아니면 비건식을 파는 곳이 정말 없다”고 말했다. 최 기자 또한 스테이크 소스를 두부스테이크 위에 얹으려다 소스에 소고기가 소량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포기해야 했다. 전날 마트에 진열된 소스 3~4가지의 성분표를 모두 살펴봤지만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것은 없었다.
높은 가격도 부담스러운 점이었다. 조 기자는 “돼지불백을 시켰다면 8000원에 고기와 상추, 깻잎을 먹을 수 있었겠지만 채식 메뉴를 선택했더니 두 배 가까운 1만4500원이 들었다”며 “채식인들의 불편이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채식인을 위한 다양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심 기자는 “채식하는 개인의 의지만 요구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며 “사회가 채식인의 존재를 인지하고 선택지를 제공해야 한다. 당당히 채식 선언을 할 수 있는 분위기도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 기자는 “ ‘채식을 하자’는 목소리를 강요나 위협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지만 채식주의자들이 마음 편히 밥 먹을 곳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채식인들에 대한 차별과 조롱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July 26, 2020 at 06:02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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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없는 복날'···상식 깬 몸보신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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