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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ly 26, 2020

'고기 없는 복날'···상식 깬 몸보신 - 경향신문

tosokpopo.blogspot.com
2020.07.26 20:02 입력 2020.07.26 21: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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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 중복입니다~. 닭 준비하세요. 삼계탕에 넣어드시라고 살아 있는 전복에 낙지까지 한 팩에 1만원!”

26일 오전 서울 동작구의 한 슈퍼마켓에서는 중복맞이 세일이 한창이었다. 손님들은 삼계탕용으로 포장된 영계와 전복, 낙지 등을 바구니에 분주히 담았다. 같은 시각, 종로구의 유명 삼계탕집에는 ‘몸보신’을 하려는 이들로 긴 줄이 생겼다. 익숙한 복날 풍경이다.

‘고기 없는 복날’은 가능할까. 나아가 채식으로 보신할 수 있을까.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4명이 생애 첫 ‘채식으로 보신하기’에 도전해봤다. 동물성 식품을 모두 제외한 비건식과 달걀·생선은 포함하는 페스코식 등 동물의 희생을 최소화한 음식들로 식탁을 꾸렸다.

조문희 기자가 중복인 26일 점심으로 먹은 두부 스테이크와 해시브라운, 토마토 수프. 샐러드 밑으로 하얀 두부가 보인다. 조 기자는 저녁으로는 비건 버거와 쌀빵을 먹었다. /조문희 기자

조문희 기자가 중복인 26일 점심으로 먹은 두부 스테이크와 해시브라운, 토마토 수프. 샐러드 밑으로 하얀 두부가 보인다. 조 기자는 저녁으로는 비건 버거와 쌀빵을 먹었다. /조문희 기자

조문희 기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미트 러버’다. “늘 고기를 먹기 때문에 복날이라고 특별히 보신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그는 이날 서대문구의 한 비건 식당에서 두부스테이크를 먹었다. 복날이면 삼계탕이나 연포탕을 찾았다는 심윤지 기자는 해물김치전을 부쳤고, 주로 탄수화물을 먹고사는 최민지 기자는 집에서 직접 파프리카와 양파를 버무려 두부스테이크를 구웠다.

심윤지 기자의 이날 점심 메뉴는 직접 만든 해물김치전과 우렁쌈밥, 김치치즈김밥이었다. 후식으로는 수박과 자두를 먹었다. /심윤지 기자

심윤지 기자의 이날 점심 메뉴는 직접 만든 해물김치전과 우렁쌈밥, 김치치즈김밥이었다. 후식으로는 수박과 자두를 먹었다. /심윤지 기자

한국 사회에서 보신이란 곧 ‘고기를 먹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고기 욕심이 별로 없다는 김희진 기자조차 “평소 식사할 때 돈가스나 햄 같은 고기 반찬 하나는 있어야 서운하지 않다”고 말할 정도다. 그래서 이날의 채식은 이런 견고한 상식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이날 바질페스토 샐러드와 푸실리파스타, 호박죽, 연어 샌드위치 등으로 하루를 보낸 김 기자는 ‘보신’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김희진 기자가 26일 보식 메뉴로 선택한 채식 메뉴. 점심에는 바질페스토 샐러드와 푸실리파스타 그리고 호박죽, 저녁에는 연어 샌드위치를 먹었다. /김희진 기자

김희진 기자가 26일 보식 메뉴로 선택한 채식 메뉴. 점심에는 바질페스토 샐러드와 푸실리파스타 그리고 호박죽, 저녁에는 연어 샌드위치를 먹었다. /김희진 기자

“처음에는 ‘보신’과 ‘채식’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하지만 샐러드를 먹으면서 생각보다 포만감이 들고 속도 편안했습니다. 나름대로 단백질과 탄수화물 등 균형 잡힌 식사가 돼서 보신이 별거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채식하는 날로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최 기자의 경우 일종의 ‘디톡스’ 효과를 느꼈다. 휴일인 이틀 내내 고기와 밀가루 위주의 식사를 한 터라 속이 더부룩했는데, 세 끼 채식으로 몸이 깨끗해진 기분이 들었다. 생명에게 조금이라도 덜 폭력적인 식사를 했다는 뿌듯함도 컸다.

고기 없으면 밥을 잘 안 먹는다던 조 기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보였다. 그는 “고기의 쫄깃한 식감만 보장된다면 채식을 해볼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 하루짜리 채식 도전에도 곳곳에 암초가 있었다. 우선 선택지가 극히 적었다. 식당 고르기부터 쉽지 않았다. 김 기자는 “집 근처 유일한 비건 식당에서는 잡곡 리소토 등 꽤 풍족한 식사를 할 수 있지만 하필 쉬는 날이라 갈 수 있는 곳은 샐러드집뿐이었다”며 “홍대 앞이나 성수동 같은 번화가가 아니면 비건식을 파는 곳이 정말 없다”고 말했다. 최 기자 또한 스테이크 소스를 두부스테이크 위에 얹으려다 소스에 소고기가 소량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포기해야 했다. 전날 마트에 진열된 소스 3~4가지의 성분표를 모두 살펴봤지만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것은 없었다.

최민지 기자가 파프리카와 양파 등을 넣고 만든 두부 스테이크(왼쪽). 고기와 달걀 대신 부침가루를 넣어 동그란 모양을 유지해보려 했지만 계속 부서져 실패했다. 오른쪽은 오전 오후 두 번 후식으로 먹은 수박. /최민지 기자

최민지 기자가 파프리카와 양파 등을 넣고 만든 두부 스테이크(왼쪽). 고기와 달걀 대신 부침가루를 넣어 동그란 모양을 유지해보려 했지만 계속 부서져 실패했다. 오른쪽은 오전 오후 두 번 후식으로 먹은 수박. /최민지 기자

높은 가격도 부담스러운 점이었다. 조 기자는 “돼지불백을 시켰다면 8000원에 고기와 상추, 깻잎을 먹을 수 있었겠지만 채식 메뉴를 선택했더니 두 배 가까운 1만4500원이 들었다”며 “채식인들의 불편이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채식인을 위한 다양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심 기자는 “채식하는 개인의 의지만 요구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며 “사회가 채식인의 존재를 인지하고 선택지를 제공해야 한다. 당당히 채식 선언을 할 수 있는 분위기도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 기자는 “ ‘채식을 하자’는 목소리를 강요나 위협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지만 채식주의자들이 마음 편히 밥 먹을 곳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채식인들에 대한 차별과 조롱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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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6, 2020 at 06:02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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